포도넝쿨처럼 자라는 청년의 꿈, 영진산업
과실이 튼실하게 여무는 고장
영천은 비가 적게 오고 맑은 날이 많아 과일 농사를 짓기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그 덕에 포도와 복숭아 재배 면적 전국 1위를 자랑한다. 영진산업 대표인 이수민, 이정민 자매도 어릴 적부터 영천에서 포도와 복숭아 농사를 짓는 친척 어르신들의 과수농장을 뛰어놀며 자랐다.
포도농사는 다른 과수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포도나무 전지 후 따뜻한 4월이 되면 포도 순이 올라오는데 그 포도 순을 1차 철선(유인줄)에 포도 클립으로 고정시켜줘야 한다. 포도 클립으로 줄기를 잡아줘야 포도 순이 Y자 모양으로 예쁘게 자라고 후에 포도 수확도 쉽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기존의 포도 클립은 손에 힘을 주거나 기구를 사용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게다가 바람에도 고정되지 않아 자리를 이탈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익숙한 것의 사소한 변화
영진산업 대표 이소민 씨의 서울 생활은 10초에 한 번씩 퇴사를 마음먹게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고향이 그리웠지만 쉽게 마음먹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중 마침 ‘경북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발명왕 아버지가 설계하고 포도농장 집 딸인 어머니와 함께 더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포도 클립을 개발했다.
새로 개발한 포도 클립은 유연성이 좋아 손에 힘을 덜 들이고 설치할 수 있어 시간과 노동력을 줄일 수 있고 한번 설치하면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기존 포도 클립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가격이 비싸지만 태양열에도 변형되지 않고, 다년간 사용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제품 개발하면 밭에 가져가 일하시는 분들에게 사용감을 물었어요. 그분들이 손이 아프다거나 불편하다고 하시면 바로바로 개선해서 제품을 만들었죠”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만든 포도 클립은 상표등록과 디자인 등록을 마치고, ‘덩굴성과수 줄기 지지구(특허 제10-1731271호)’가 특허를 획득했다. 2018년엔 한국 여성 발명 엑스포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도 이뤘다.
단순한 진심을 만들고 전하는 마음
물론 모든 일이 순탄하진 않았다. 제조사의 말만 믿고 덜컥 선택했던 플라스틱이 내구성이 약해 쉽게 부러졌다. 믿고 구매했던 농가에 일일이 찾아가 다시 제조한 튼튼한 포도 클립에 대해 설명하고 사과하며 전량 새 제품으로 교환해드렸다.
“저희 고객이 SNS 하는 분들은 아니니까요. 농장에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명해드리고 샘플을 드리고 왔어요. 전국 농협에 전화해서 그 동네에 포도밭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고 하면 달려가서 설명하고 판매했죠.”
포도 클립은 주로 영천과 상주의 포도 농가와 농협이 주 고객이다. 지구의 날씨가 따뜻해지며 포도농가가 더 많아졌다. 올해는 샤인 머스캣이 유행하며 큰 사이즈 클립이 많이 판매됐다. 포도 줄기 뿐 아니라 모든 줄기식물 성장 클립으로 사용할 수 있어 복숭아 농가에서도 입소문이 났다.
로컬에서의 삶을 꿈꾸는 당신에게
“저는 원래 영천에 살다가 다시 돌아와서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서울에만 살다가 시골로 오신 분들은 처음엔 힘드실 수 있어요. 단점이라면… 야식은 10시 전에 배달시켜야 한다는 것 정도?(웃음) 귀촌을 꿈꾼다면 차라리 최대한 빨리 내려와서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수민, 이정민 자매는 일 년만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돌아온 영천에서 이제 미래를 꿈꾼다. 내년부터는 포도 클립으로 해외진출을 하기 위해 해외 특허와 허가 등을 준비하고 있다. 영천은 과수 농가가 많은 김천, 대구, 상주, 청도를 모두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다. 농민들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제품 관리도 해야한다는 점에서 영천은 교통의 요지다. 농업과 관련된 일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영천만 한 곳이 없다. 도시가 아닌 곳에서의 삶을 꿈꾼다면, 과수 농가와 밀접한 일에 도전하고 싶다면 영천은 기회가 가득한 곳이다.
